2009년 4월 4일 토요일

비속어로 되돌아본 가디언의 지난 10년

  종이 신문이 모니터 속으로 들어온 지 벌써 10년, 그동안 인터넷은 오프라인 미디어 시장에도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2008년에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매체인 뉴욕 타임즈가 API를 공개했고 영국의 가디언도 2009년 3월 초에 이 대열에 합류했다. 오픈 플랫폼(Open Platform) 정책이다. 뉴스를 보여주기만 하던 서비스 개념에서 벗어나 그 데이터베이스를 외부에 공개해 개발자들이 가디언紙의 콘텐츠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 주의: 영어 비속어 자주 등장함.

  가디언이 API를 공개하자마자 영국의 한 개발자가 이것을 이용해 아주 재미있는 결과를 내놓았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Tom Hume이라는 개발자는 지난 10년 동안 발행된 가디언의 기사에서 특정 비속어가 사용된 횟수를 조사해 이를 그래프로 만든 것이다. 그가 조사한 특정 비속어란 'fuck', 'shit', 'cunt', 'wank', 'bastard', 'arse', 'cock' 등 모두 7개다. 여러분께 죄송하지만, 뜻이 궁금한 분은 직접 찾아보시기 바란다. 이 단어들을 여기에 적는 것만으로도 거시기한데 하물며 그 뜻까지....나는 가디언 기자가 아니다. -_-

  신문에 비속어라니? 우리로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기자가 아니라 잘은 모르겠으나, 언론사마다 비속어나 욕설 등을 사용하지 못하게끔 명시한 보도지침 같은 것이 있으리라 본다. 가디언에도 styleguide가 있어 기사작성시 욕설(swearwords)이나 기타 단어 사용에 대한 지침을 마련해 놓았다. 그곳에도 적혀 있듯이 참으로 'liberal'하다.

첫째, 독자를 염두에 두어라. 그리고 무심코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을 존중해라.
둘째, 그런 언어를 사용하되 사실 기술에 꼭 필요할 때, 혹은 기사에서 한 인물(인격)을 묘사할 때만 사용해라. 직접 인용을 제외하고 비속어가 필요한 경우는 거의 없다.
셋째, 비속어의 어감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것을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더 고심해봐야 한다.
넷째, 절대로 별표(*)는 쓰지 마라. 책임을 회피하는 구실일 뿐이다. (예) sh*t
First, remember the reader, and respect demands that we should not casually use words that are likely to offend.
Second, use such words only when absolutely necessary to the facts of a piece, or to portray a character in an article; there is almost never a case in which we need to use a swearword outside direct quotes.
Third, the stronger the swearword, the harder we ought to think about using it.
Finally, never use asterisks, which are just a cop-out.

  아래 그래프가 바로 그 결과물로서, 지난 10년 동안 가디언紙 기사에 등장했던 비속어의 빈도 추이를 보여준다. y축 범위는 0%~0.9%다.

Swearing in the Guardian, 1998 - 2008

  이 그래프에서 헐리우드 영화를 많이 접한 우리에게도 친숙한 shit이 2005년 이후로 전성기를 맞았으며, 또 다른 친숙한 단어인 fuck은 2004년을 기점으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fuck이란 단어가 전성기를 맞은 이유는 아마도 비속어 신분을 벗어났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2002년에 가디언지는 한 기사에서 'fuck'이 지난 500년 동안 널리 쓰인 덕택에 비속어에서 벗어나 단순한 감탄사나 부가 어구로 쓰이는 일상어로 자리를 잡았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2001년엔 경찰관에게 'fuck off'라고 말했다가 기소된 사람에게 영국 법원이 그 세대의 언어를 사용했을 뿐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결하기도 했으니 언론사가 일상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누가 뭐라고 하겠나.

  한편, wank와 cunt는 단어의 수준이 말해주듯 가장 낮은 빈도를 보이지만 가디언 기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있다. 문제는 bastard다. 2001년부터 계속 이 단어의 사용이 줄어들었는데 아무래도 이제는 영국 사람들이 bastard만으로 모멸감을 느끼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Tom은 장난삼아 9/11 테러를 그 이유로 들기도 했다.

  일상생활에서도 비속어는 잘 쓰면 약이고 못 쓰면 독이다. 가디언이 세계적인 온라인 매체로 자리 잡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비속어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적재적소에 비속어를 사용함으로써 독자에게 쾌감을 전달하고 언론으로서 할 소린 한다는 느낌을 받게 한 까닭이 아닐까? 꿈보다 해몽. :-)


왠지 관련있어 보이는 글

죽기 전에 보고 들어야 할 4,000가지
가디언이 엄선한 유튜브 명작 50
위키피디아 자료를 인용해 망신살 뻗친 영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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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를 게양하느니 사표를 쓰겠다


댓글 7개:

  1. 꿈보다 해몽 ㅋㅋ

    기사 자체가 훌륭하다면 적재 적소에 사용되는 비속어는 일종의 카타르시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너무 자주 쓰면 효과가 떨어질테니 적당히 정말 욕먹어도 마땅한 상황에 써야 하겠지만요.(뭐 작금의 상황이라면 매일 나와도 어쩔 수 없지만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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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론도니움 사람들은 bastard라는 말을 격하게 싫어하는 줄 몰랐어요;;; (이제 안 써야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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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rackback from: 서울비의 생각
    비속어로 되돌아본 가디언의 지난 10년 — Oddly En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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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JNine - 2009/04/04 21:10
    그렇죠, 제 해몽에 동감하시는군요. ㅋㅋ 과유불급이라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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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ginu - 2009/04/04 21:39
    유행이 지났다고 봐야죠. 지금 격하게 뜨고있는 단어는 그래프 보셔서 아시겠지만 shit이 대세랍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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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흥미로운 기사들도 종종 쓰고 그래프 같은 디자인도 잘 만들고 글자체도 좋아해서(저에게는 다른 폰트보다 가독성이 좋더라구요.) 가디언 좋아하는데, 요즘은 이런 기사도 있군요.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덕분에, 오랫만에 가디언을 만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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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청련 - 2009/04/06 01:21
    개인적으로 가디언 웹사이트의 딱딱하지 않은 디자인이 마음에 듭니다. 컬러도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다양하고. 보는 이를 즐겁게 해준다고 할까요. 물론 내용도 마음에 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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