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11일 토요일

라이베리아엔 칠판 블로거가 있다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아날로그 블로거(analog blogger)라고 부르는 모양이지만, 사실 그가 블로그를 실제로 접해봤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줄곧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생활해왔던 사람이 인터넷을 사용해봤겠느냐는 얘기다. 비하 의도는 절대로 없으니 오해는 마시라. 하지만, 의도한 바이건 아니건 간에 그가 하는 일은 블로깅이 맞다. 다름 아닌 오프라인 칠판 블로깅이다.

아프리카 라이베리아(Liberia)의 수도 몬로비아에 사는 Alfred Sirleaf 씨는 매일 아침에 신문을 여섯 개 이상 읽고 가장 중요한 소식을 몇 가지 간추린 다음 골방에 앉아 열심히 칠판에 적는다. 그리고 완성이 되면 바깥 도로변에 내다 건다. 블로거가 흔히 쓰는 말하는 '발행' 또는 '포스팅'이다. Sirleaf 씨의 블로그 이름은 Daily Talk다. 물론 오프라인 블로그인 탓에 블로그 링크는 없다. 그저 사진과 동영상으로만 구경할 뿐.

Daily Talk, photo via AfriGadget


그가 이렇게 매일 시간과 공을 들여가며 칠판 블로깅을 하는 이유가 뭘까? 그것을 이해하려면 라이베리아란 나라의 탄생과 현 상황을 잠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아프리카 서안에 있는 라이베리아는 1822년 미국 한 식민회사가 해방된 노예를 이주시켜 건설한 국가로 현재까지 그 후손이 권력 대부분을 차지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오래 전부터 입맛대로 신문을 감독, 편집하여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만들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잠깐 이슈가 되기도 했던 아프리카 첫 여성 대통령을 배출한 나라가 바로 라이베리아다. 공교롭게도 이 여성 대통령의 성은 칠판 블로거와 같은 Sirleaf다. 그녀가 대통령에 선출되기 전인 2003년까지 약 14년 동안 내전이 일어나 라이베리아 국토는 피로 얼룩졌으며, 기간시설은 모두 파괴됐고 교육 또한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이렇게 내전이 막바지일 무렵 Sirleaf 씨는 한가지 결심을 한다. 국민이 나라 안팎 소식을 잘 알아야 내전으로 황폐된 라이베리아가 부활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돈이 없어 인터넷, TV는커녕 신문도 못 보는 사람들을 위해 매일 칠판에 나라 안팎의 소식을 담기로 결심한 것이다. Sirleaf 씨는 교육의 부재로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을 배려하고자 다양한 소품까지 동원한다. 그것이 UN 관련 기사라면 UN군 헬멧을, 축구 기사라면 축구선수 포스터를, 유가 변동은 물감이 섞인 물병을 걸어 놓음으로써 온 국민 계몽에 힘쓴다.

UN 군과 일반 군인 헬멧. photo via AfriGadget

자동차를 타고 그의 블로그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읽을 수 있도록 글은 최대한 선명하게 쓴다. 그뿐만 아니라, 블로그 한쪽엔 작은 점수판이 있다고 한다. 비록 수도라 하더라도 몬로비아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 많아 자가발전을 이용하는 곳이 많은데, 이 점수판으로 몬로비아 시에 있는 등잔불과 전등을 비교한다. 신문만이 그의 블로깅 소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도시 곳곳에 퍼져 지내는 Sirleaf 씨 친구들은 특종감을 발견하는 즉시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댓가는 없다. 모두 자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칠판 블로그는 수익이 있을까? 물론이다. 애드센스처럼 그의 블로그에도 광고를 붙여 놓는다. 블로그 하단의 광고 단가는 5달러고, 칠판 옆 광고는 10달러, 본문 광고 삽입은 25달러다. 때로는 현금이나 휴대전화 충전 카드 등이 선물로 들어올 때도 있다고 한다.

그가 Daily Talk에 가진 자부심은 대단하다. Sirleaf 씨의 목표는 몬로비아 시와 다른 몇몇 도시에 현재는 하나뿐인 이 칠판 블로그의 분점(?)을 열어 라이베리아 사람들에게 다양한 정보와 소식을 전하는 것이라고 한다.

Daily Talks의 목표는 모든 라이베리아인이 뉴스를 접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대다수가 찬성하지 않는데도 소수가 다수를 대변한답시고 의사 결정을 내리면,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 피해자가 될 게 뻔하기 때문이지요.
Daily Talk's objective is that everybody should absorb the news. Because when a few people out there make decisions on behalf of the masses that do not go down with them, we are all going to be victims.

블로그가 미디어냐 아니냐를 두고 우리나라 블로고스피어에선 의견이 엇갈리지만, 적어도 Sirleaf 씨의 블로그 Daily Talk 만큼은 하나의 독립 미디어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것도 정치, 경제, 스포츠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그가 바라는 대로 머지않아 라이베리아 곳곳에서 칠판 블로그 'Daily Talk'를 볼 수 있기를 나 또한 진심으로 바란다.


Source: AfriGadget, NY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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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2개:

  1. 흥미롭군요.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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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잘보고 갑니다. 내전에 황폐화 되었어도 언로는 저렇게 트여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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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정말 희한한 뉴스네요....

    칠판이라서 댓글과 트랙백은 어떻게 넣나요..ㅋㅋ

    즐거운 주말되세요...



    with okgosu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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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daewonyoon - 2009/04/11 12:00
    읽어 주시니 제가 더 감사하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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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reno - 2009/04/11 12:28
    내전 기간 동안엔 체포되거나 추방당하기도 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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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훌륭한 사람이네요.



    윗분 댓글이 웃기네요. 댓글과 트랙백...생각해보니깐 어떻게 남기죠 ^^?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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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심오한 뜻이 있었군요.^^ 저렇게 바깥세상을 알리다니 대단한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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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댓글과 트랙백은 포스트잇과 다른 칠판이 있는 장소를 남기는 것으로;;;



    짠한 내용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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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근래에 봤던거 중에서 인상적이네요..ㅎㅎ

    많은 이야기 전해주세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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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okgosu - 2009/04/11 12:40
    댓글과 트랙백은 모두 면전에서 이루어집니다. ㅋㅋ

    okgosu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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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JUYONG PAPA - 2009/04/11 14:43
    선구잡니다. 댓글과 트랙백은 okgosu님께 말씀드린 바와 같이 면전에서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현피'라고 하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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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진사야 - 2009/04/11 15:05
    블로거로서 배워야할 점이 많은 사람이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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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JNine - 2009/04/11 15:09
    포스트잇은 저들에게 너무 비싸지 않을까요? 그냥 일대일 맞장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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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asura - 2009/04/11 15:35
    헉... 앞으론 매번 인상적인 소식을 전하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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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오오 !! 블로그 운영하고 있지만 이렇게 심오한 블로그는 처음이군요 !!

    좋은 소식 잘보고 갑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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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SEphine - 2009/04/12 15:10
    제 블로그를 말씀하시는 거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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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하하 제미있는 글 잘보고 갑니다.. 나미비아 블로거가 단순한 블로그 수익만으로 따지면 한국 블로거들보다 많을 듯하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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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천추 - 2009/04/15 17:16
    그나라 상황을 감안해 상대 비교를 한다면 월등히 많지 않을까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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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진정한 의미의 1인 미디어입니다.

    Odlinuf님의 취재원들은 도대체 어떤분들일지 궁금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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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fruitfulife - 2009/05/28 01:54
    제 취재원은 세계 각국에 널려 있습니다요. ㅎㅎ 언제 한번 모아서 회식해야하는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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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뭔가 멋져 보이는 이유는 뭘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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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멋진 분이네요. 진짜 블로거라는 게 있다면, 저 분이야말로 그런 칭호를 얻을만한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덕분에 유익한 글 읽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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