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서 사진작가와 목공으로 활동하는 Nils-Petter Löfstedt와 Erik Vestman은 지난 1월부터 Malmö라는 마을 바닷가 부두에서 수상쩍은 작업을 해왔다. 부두에 옆면에 난 구멍으로 들어가면 큰 공간이 나타나는데 그곳을 자신들만의 거실로 꾸민 것이다. 들어가 보자.
둘 중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저 사람이 서 있는 곳 바로 아래가 입구다.
처음 모습인 것 같다. 말라 비틀어진 해초도 보이고 바닥에 자갈이 무척 많다. 허리를 펴고 설 수 없을 정도로 낮은 것도 문제다.
돌을 걷어내서 벽과 바닥을 나무판으로 깔았다. 허리를 펴도 될 만큼 공간이 여유로워졌다.
보통 방처럼 잠금장치가 달린 출입문도 설치하고
벽과 천장도 말끔히 보이도록 흰색으로 칠했다.
바닥도 조심조심 줄 맞춰서 마루로 장식하고
거의 완성 단계다. 사진 좌우로 통나무 벤치와 바위 소파가 보인다. 천장 둥근 부분은 아무래도 전등을 설치하려고 남겨 둔 것 같다.
바닷가에 있어 혹시나 침수되지는 않을까 걱정되지만, 다행히 위치가 높아 그런 일은 없는 모양이다. 들어가서 살려면 생명보험에라도 가입해야 하는 건 아닌지.
Bishop씨가 이 일을 시작한 건 1969년이다. 콜로라도의 한 산기슭에 땅을 사서 매년 주위에 있는 돌덩이를 모아 위 사진에 있는 성(Bishop Castle)을 지었다. 들어간 돌 무게만 약 1,000톤이 넘는다. Bishop씨는 다른 누군가의 도움도 전혀 받지 않았고 받기도 싫어한다. Bishop씨는 이 성을 '가난한 자의 디즈니랜드'라고 부른다. 성 높이는 약 48미터며 외부에 나선형 계단이 있어 첨탑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계단 폭이 좁고 가팔라서 올라가려면 용기가 조금 필요하다.
스페인에서 성당을 짓는 Martinez 씨도 그랬듯이 Bishop Castle을 이만큼 짓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Martinez씨는 방해라도 없었지만, Bishop씨는 정부로부터 온갖 방해를 다 이겨내고 지었다. 오죽했으면 정부가 나에게 할 일은 이제 총질밖에 없다고 말했을까. 미국 정부가 이 성을 건축하는 것에 딴죽을 건 이유는 다름 아닌 위치다. Bishop Castle이 있는 곳은 미국 정부가 관리하는 국유림이고 Bishop씨가 사용한 돌은 모두 이곳에서 가져왔기 때문이다. 또한, 국유지에 지었기 때문에 불법이며, 성 자체도 안전하지 않다는 판단을 미국 정부가 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미국 정부는 Bishop씨에게 사용료를 내라고 요구해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문제가 모두 원만하게 해결돼서 Bishop Castle은 콜로라도 관광 안내책자에도 실릴 만큼 유명한 관광지로 떠올랐다고 한다.
Martinez씨 성당도 그렇듯 인생의 반 이상을 다 바쳤지만, 역시 Bishop씨의 성도 아직 미완성이다. Bishop씨의 목표 또한 죽기 전에 성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의 계획은 성 주위에 해자와 도개교(들어 올리는 다리), 롤러코스터를 만드는 일과 오케스트라를 수용할 만큼 큰 발코니를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 자신의 아내를 위해 또 다른 성을 지어주는 게 마지막 계획이라고 한다. 마지막 계획은 약간 무리일 듯하나, 모쪼록 그가 바라는 목표를 모두 이루셨으면 좋겠다. 성 모습을 더 보시려거든 플리커로.
냉전주의 시절 북한, 옛 소련, 중국 건축물의 공통점은 모두 선이 곧고 웅장하다는 점이다. 건축가의 창의성이나 예술성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자신들의 이데올로기가 우수하다는 것을 알리고자 이런 양식을 선택했는데 그 영향력이 미치지 않았던 또는 미치지 못했던 곳이 있다. 바로 교통 분야다.
이렇게만 얘기하면 여러분은 모스크바의 지하철 역사 내부를 떠올릴지 모르나,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건 옛 소련의 버스 정류장이다. 버스 정류장 쯤이야 잘 지어봤자지 혹은 대충 디자인 통일해서 지었겠지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소련 교통관련 담당자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각 지역 문화를 반영하고 디자이너가 자신의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한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photo by Christopher Herwig
하지만, 안타깝게도 버스 정류장이 호사를 누리던 시절은 공산주의의 몰락과 함께 쇠퇴하고 만다. 소련이 붕괴되자 시골에 살던 사람들은 더 큰 마을과 도시로 떠났고 버스 정류장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지금처럼 사막이나 주위를 둘러 봐도 집 하나 없는 곳에 버려진 것이 대부분이다.
위 사진은 Christopher Herwig 이란 캐나다 출신 사진작가가 2002년부터 발트 해 주변 나라와 중앙아시아를 돌아다니다가 찍은 것 중 일부다.
2009년 3월 24일, 그러니까 내일은 정말로 중요한 날이다. 내 생일이어서가 아니라, 바로 대한민국과 이웃나라 일본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대망의 결승전이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나나 여러분 모두 아침부터 가슴 졸이게 생겼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베네수엘라 경기 때 만큼만 해준다면 한시름 놓을 텐데.
일본과의 경기도 있고 해서, 조금 억지스럽긴 하지만, 일본과 관련된 소식을 준비했다. -_-
일본 나가노현의 지노시에는 아주 특별한 찻집이 있는데, 오히려 공포체험 집이라 부르는 게 더 어울릴 듯한 이 집은 위험천만하게도 단 두 그루의 나무 위에 지어졌다.
이 집은 유명한 건축가이자 도쿄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인 후지모리 테루노부가 설계한 작품으로 실제로 그는이곳에 올라가 차를 마신다고 한다. 차를 마시며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이를테면 그만의 명상과 안식의 공간이다. 건축가가 지었다니 다소 안심이긴 하나 그래도 조금 위태스러워 보이는 건 사실이다. 마치 내일 있을 야구경기를 보는 것처럼. 예상 점수 5-3. 물론 한국이 5.
유럽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어느 나라에 가든지 꼭 들르는 곳이 있습니다. 옛부터 교회중심 사회였던 유럽은 각 나라마다 유명한 성당이 있게 마련이며, 또한 그 유명한 성당은 대부분 건축학적으로도 중요해서 여행자들은 신자로서 또는 (저처럼) 당시의 여러가지 문화를 간접 체험하기 위해 그곳을 방문합니다. 저같은 사람들이 성당에 가게되면 처음에는 그 웅장함과 정교함에 감탄하고, 두 번째로는 많은 관광객때문에 입이 벌어집니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 '다녀왔다'라는 단순한 생각 외에 자신에게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하고 혼자 궁금해 한 적도 있습니다.
성당과 같은 건축물은 주로 교회로부터의 지시나 왕명을 받은 건축가에 의해 지어졌습니다. 다시 말해, 교회와 국가로부터 물심양면적인 지원이 있었습니다. 건축이라는 것이 한 두 푼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레고 성 쌓듯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 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많은 인력과 금적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스페인의 한 성당은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성당의 벽돌은 하나 둘 씩 올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진)
Justo Gallego Martinez가 성당을 짓기 시작한 해는 1961년, 40년을 훌쩍 넘어 이제 그가 이 일을 시작한 지 반백년에 가까워져 가고 있습니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근교 마을 Mejorada del Campo에 살고 있는 그는 원래 수도원에서 생활하던 평범한 수사(修士)였지만, 결핵이라는 병을 얻어 몸이 약해지면서 어쩔 수 없이 수도원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 때 그는 성모 마리아에게 다짐합니다. "병이 낫는다면 당신을 위한 사원을 짓겠습니다." 그는 병이 나앗고,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반 평생을 바쳐 성당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약속도 약속이지만 그에게 있어서 벽돌을 하나 하나 쌓아 올리는 것은 하나의 고행과도 같습니다.
건설 자재는 대부분 드럼통, 나무, 플라스틱 등의 재활용품이며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는 도르레도 그가 직접 자전거 바퀴를 개조해 만든 것입니다. 물론 다른 공사현장에서 쓰다 남은 건설 자재를 구해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붕에 돔을 만들 때는 6명의 조카들이 그에게 도움을 주었고, 여름이면 가끔씩 자원하여 오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위험한 작업을 해야하는 경우엔 사람을 사서 공사를 진행해 왔으며 전문가에게 비용을 지불하여 자문을 구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쯤되면 여러분에겐 의문점이 하나 생길 것입니다. "도대체 그럼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지?" 다행히 그가 빈털터리는 아닌가 봅니다. 그에게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있어서, 이 땅을 팔거나 빌려주는 돈과 기부금으로 건설비용을 마련한다고 합니다.
Justo Gallego Martinez. image by gmalon (flickr.com/photos/guillermomalon)
사람들은 그를 'el loco de la iglesia - 교회의 얼간이'라고 비웃었고, 지역사회는 물론 정부와 종교단체들은 그를 외면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방송사와 신문을 통해 알려진 지금 그와 성당을 지켜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두 가지로 나뉘어 있는데, 여태 그래왔듯 눈에 거슬리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이 성당이 관광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편, 건축 업자들과 전문가들과은 성당의 구조적인 안정성에 대해 확신을 못한다는 입장이어서 누구도 앞으로 나서려고 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이와 더불어 성당에 대한 공식적인 지원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Martinez는 그가 죽고 난 뒤에 성당도 함께 역사속으로 사라져 버릴까 걱정할 때도 있다고 합니다.
건축가들은 이 성당이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지어져 완공되기까지는 약 20~30년이 더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의 나이가 여든 셋이라고 한다면 산술적으로 그리고 인간의 수명을 고려해 봤을때 절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의 열정만으로 본다면 그는 이미 성당 10개를 짓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물론 자신과의 약속도 지켰다고 그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지금도 성당 안에서 그는 시멘트를 개고 사다리를 올라가 묵묵히 작업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가우디가 몇 백 년이 지나도록 완공하지 못하는 성당을 Martinez 할아버지는 신념 하나만으로 그것도 혼자 힘으로 버티면서 이와 같이 웅장한 예술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만약 이 성당이 그의 손으로 완성된다면 세계 어느 성당과 비교할 수 없는 값어치와 상징성을 지니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반드시 이 고행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기를 기대합니다.